음악이 내러티브를 먹어버린, 하지만 아름다운 영화 once
나는 내러티브의 신봉자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내러티브이다. 디워같은 영화, 그래서 무진장 싫어한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철저한 기준이 살짝 변하는 때도 있다. 지난 번, 이명세 감독의 '형사'를 보았을 때, 그리고 오늘 본 'once'와 같은 영화를 볼 때.
이 영화는 철저히 음악만을 위한 영화다. 보통의 영화들에서, ost가 영화의 극적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양념처럼 쓰였다면 이 영화는 반대이다. 남자(the guy)와 여자(the girl)의 음악을 위해 그들의 스토리가 사용(?)된다. 하지만 너무 신기한 것은 영화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음악을 통해 이 영화의 이야기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텔링'되고 있다는 사실.
영화의 화면은 시종일관 칙칙하다. 요즘은 티비에서조차 HD네 뭐네 하며 뽀샤시한 화면의 극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요러한 작금의 세태에서 살짝 벗어나주시는 감각이 새롭다. 하하. 지글거리는 디지털 화면과 거의 사용하지 않은 듯한 조명, 고정되지 않은 카메라의 움직임에서 감독이신 존 카니님께서 영화의 때깔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떠랴, 요러저러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영화 자체는 느무느무 아름답기 그지 없으므로.
'사랑'을 하기보단 훌쩍 '커버린' 그와 그녀
제임스 조이스의 'Dubliners'를 보면 음울하기 그지없는 무채색의 도시 더블린이 등장한다. 이 영화의 무대도 바로 그 더블린이다. 거리에는 마약에 취한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동유럽계 이민자들이 곳곳에서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어두운 도시 더블린. 그곳에서 그와 그녀가 만난다. 진공청소기를 고치며 거리에서 노래를 하는 그와 역시 거리에서 꽃을 파는 그녀. 그녀는 체코에서 온 이민자이며 어린 딸과 어머니를 부양하고 있다. 그의 음악을 알아보고 성큼 다가오는 그녀를 단순한 성적 대상으로 생각했던 그가 따끔한 그녀의 일침으로 '후딱' 정신을 차려주신다. 이 영화 곳곳에서 그녀의 '당참'은 빛을 발한다.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며 덧없이 나이만 먹어가던 그는 그녀를 통해 훌쩍 자라나고 스스로의 꿈을 위해 작은 발걸음을 내딛는다.
참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이야기한다. 툭하면 사랑 때문에 가족을 버리고 툭하면 사랑 때문에 목숨까지 버려주신다. 신파로 가득한 세상. 이 영화 '원스'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사랑을 이야기한다.
자신과 함께 런던으로 가자고 얘기하는 남자에게 여자는 불필요한 불장난은 하지말자고 말한다. 끝내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떠나는 남자는 그녀가 갖고 싶어했던 피아노를 선물하고 돌아선다. 담백한 그들의 이야기. 그들은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열정이라는 것은 감정적인 카타르시스 그 이상의 것이므로.
그들의 음악을 들어라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인 글렌 한사드는 아일랜드의 유명밴드 더 프레임스(The Frames)의 리더이다. 여자주인공인 마르게타 이글로바는 그가 체코 순회공연 때 만난 역시, 뮤지션. 그들의 음악은 내내 훌륭하고 설득력있게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특히 제일 기억나는 씬은 그녀가 밤길을 뛰듯이 걸으며 부르던 'if you want me'. 시쳇말로 뻑간 트랙이다. 하하. 아마 이 영화의 ost는 올 여름에 구입했던 존 스코필드의 앨범에 뒤이어 내 시디 목록에 수록될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ㅋ
아! 이 영화 이후, 그들은 실제로 사랑에 빠졌단다. 둘의 나이차는 열 여덟살에 이른다고 하던데, 어쨌든 그들의 사랑을 위해 cheers!! ^^